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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번 돌리는 것만으로도 공덕을 쌓는다’는 예천의 윤장대 국보된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각각의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경상북도 예천군의 보물 제145호 ‘예천 용문사 대장전(醴泉 龍門寺 大藏殿)과 보물 제684호 윤장대(輪藏臺)’를 통합해 한 건의 국가지정문화재 국보로 승격 예고하였다.   문화재위원회(건축‧동산분과)는 용문사 대장전(건축물)과 윤장대(동산)의 건립시기, 의미, 특징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볼 때 두 보물이 각각이 아닌 일체성을 갖는 문화재이고,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 한 건의 통합한 국보로 승격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하였다.   예천 용문사는 신라 경문왕대 두운선사(杜雲禪師)가 당나라에서 돌아와 초암을 짓고 정진한데서부터 비롯되었으며, 후삼국 쟁탈기에 왕건과 관계를 맺으며 사찰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대장전과 윤장대는 고려 명종 3년(1173년) 국난(김보당의 난) 극복을 위해 조응대선사(祖膺大禪師)가 발원하고 조성한 것으로, 고대 건축물로는 매우 드물게 발원자와 건립시기, 건립목적이 분명하게(重修龍門寺記/1185년) 드러나 있다. 대장전과 윤장대는 초창 이래 여러 차례 수리된 것으로 확인되는데, 최근 동(오른쪽) 윤장대에서 확인된 천계오년(天啓 午年, 1625) 묵서명과 건축의 양식으로 미뤄볼 때 17세기에 수리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장전은 일반적으로 불교경전을 보관하는 건물인데, 용문사 대장전은 윤장대를 보호하기 위해 특별히 건립된 건물이라는 특징을 지녔다. 용문사 대장전은 다포계 맞배(책을 엎어놓은 모습)지붕 건물로 초창(1173년) 이후 8차례 이상의 중수가 있었으나 초창당시의 규모와 구조는 유지되고 있다.   중수과정을 거치면서 건축 양식적으로 현재는 17세기말 모습을 하고 있으나 대들보와 종보의 항아리형 단면, 꽃병이나 절구형태의 동자주(짧은 기둥)에서 여말선초의 고식(古式)수법이 확인된다.   무엇보다 대장전은 윤장대를 보관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경장건축(경전(經典)을 보관하는 건축물)이라는 데서 독특한 가치가 있다.   윤장대는 불교 경전을 보관하는 회전식 경장(經藏)으로 전륜장, 전륜경장, 전륜대장이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윤장대를 한번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는 것과 같다는 공덕신앙이 더해져 불경을 가까이 할 시간이 없는 대중들에게 각광을 받았다.   윤장대는 고려 초 중국 송대(宋代)의 전륜장 형식을 받아 들여 제작한 것으로 생각되며, 영동 영국사와 금강산 장안사 등에도 윤장대 설치 흔적과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현재는 예천 용문사 윤장대만이 유일하게 같은 자리에서 846년 동안 그 형태와 기능을 이어오며 불교 경장신앙을 대변하고 있다. 대장전 내부 양쪽 옆면 칸에 좌우 대칭적으로 1좌씩 설치되어 있으며, 8각형의 불전 형태로 제작되어 중앙의 목재기둥이 회전축 역할을 하여 돌릴 수 있다. 8각 면의 창호 안쪽에 경전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특히, 윤장대 동쪽은 교살창, 서쪽은 꽃살창으로 간결함과 화려함을 서로 대비시킨 점, 음양오행과 천원지방의 동양적 사상을 의도적으로 내재시켜 조형화(① 회전축에 원기둥과 각기둥 사용, ② 머름청판 풍혈을 양각과 음각으로 조각, ③ 凹·凸과 음·양 수로 구성된 회전축 밑단의 초석부재 등) 시켰다는 점에서 뛰어난 독창성과 예술성이 인정된다. 또한, 그 세부 수법 등에서 건축‧조각‧공예‧회화 등 당시의 기술과 예술적 역량이 결집된 종합예술품이라는 점에서도 가치가 크다.   이처럼 예천 용문사 대장전과 윤장대는 고려 시대에 건립되어 여러 국난을 겪으면서도 초창 당시 불교 경장 건축의 특성과 시기적 변천 특징이 기록 요소와 함께 잘 남아있다. 윤장대는 불교 경전신앙의 한 파생 형태로 동아시아에서도 그 사례가 흔치않고 국내 유일이라는 절대적 희소성과 상징성에서도 국보로 승격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현재까지 우리나라는 총 24건의 국보 건축물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번에 예천 용문사의 대장전이 국보가 되면 2011년 ‘완주 화암사 극락전’ 이후 8년 만에 다시 국보 건축물이 탄생한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국보로 지정 예고한 예천 용문사 대장전과 윤장대에 대하여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수렴된 의견을 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국보로 지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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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학술
    2019-10-04

여행 검색결과

  • 경주 불국사, 통일 신라 시대에 지어진 부처님의 나라
      통일 신라 시대에 창건된 불국사는 대한민국 대표 사찰이다. 한국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자랑스러운 한국의 문화유산, 경주 불국사를 만나보자.         불국사가 처음 창건된 것은 신라 법흥왕의 어머니인 영제부인과 기윤부인의 불심이었으나, 소규모의 절이었던 불국사를 지금의 대찰로 만든 것은 경덕왕의 재상이었던 김대성이다. 어린 나이에 사망했지만 전생의 정보를 가지고 다시 태어난 김대성은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는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님을 위해서는 석굴암을 지었다고 한다. 이후, 임진왜란을 거치며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버린 불국사는 여러 차례의 중창 및 중수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불국사는 신라인이 그리던 이상적인 세계를 옮겨놓은 곳이다. 석단을 기준으로 위는 부처님의 나라, 아래는 아직 범부에 이르지 못한 세계를 나타내는 불국사는 굳세고 단단한 돌 구조물을 통해 불국 세계의 굳셈을 보여주고 있다. 자하문으로 오르는 청운교와 백운교를 통해 부처님 나라에 들어서면 대웅전이 나온다.         불국사는 크게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신 탑이 있는 대웅전 영역과 부처님의 불상을 모신 불전으로 나눌 수 있다. 자하문을 통해 대웅전에 들어서면 불국사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인 다보탑과 석가탑이 모습을 드러낸다.       불교 서적 「법화경」에 근거하여 세워진 두 탑은 다보여래와 석가모니불이 불국사에 상주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같은 3층 석탑이지만 양식에서 극단을 보여주는 두 탑은 한국 석조 예술의 절정을 보여준다. 현세의 석가모니불을 상징하는 석가탑은 간결하고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석가모니의 설법을 상징하는 다보탑은 다양한 모양의 돌을 통해 화려한 외양을 자랑한다. 석가탑 내에서 발견된 유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1967년 국보로 지정된 뒤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대웅전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극락전은 연화교와 칠보교를 통해 들어갈 수 있다. 극락전 마당의 금빛 복돼지상은 극락전 현판 뒤에서 발견된 돼지 조각을 상징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복돼지상에 복을 빌곤 한다. 이 외에도 극락전에는 통일 신라 3대 금동불상으로 손꼽히는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이 있으니 다른 불상들과 비교하며 같이 구경해 보자.         신라 사람들은 꿈꾸던 부처님의 이상적인 세계가 바로 신라라고 여겼다 한다. 학창 시절에 수학여행 단골 코스였던 경주 불국사의 이모저모를 그 의미와 함께 생각해 보며 더 깊게 이해한다면 우리도 부처님의 이상적인 세계에 한 발짝 더 다가가 볼 수 있지 않을까.               〇 위치 :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 15-1
    • 추천관광지
    • 경북
    2022-12-25
  • [경상북도 경산시] 우리네 아름다운 역사의 보고, 경산
    우리네 역사가 고스란히 잠들어 있는 경산시는 힐링 여행과 함께 우리의 역사를 잘보여주는 여행지이다. 일상생활 속 스쳐지나갔던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며 여행을 즐겨보자.     불굴사 신문왕 10년(690) 옥희대사(玉熙大師)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조선 중기까지만 하여도 50여동의 건물과 12암자, 8대의 물레방아를 갖춘 큰절이었다. 영조 12년(1736) 큰비로 대파되자 송광사(松廣寺)에서 온 한 노승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철종 11년 경신(1860)에 다시 중건하였으며, 1939년 기묘 3월에 은해사 장경파백현(張鏡波伯鉉)이 중건하였다. 경내에 삼층석탑, 약사여래입상, 석등, 부도 등이 있다.     ○주소 : 경북 경산시 불굴사길 205     환성사 흥덕왕 10년(835)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창건했다. 고려 말에 불탄 것을 인조 13년(1635) 신감대사(神鑑大師)가 중건하였고 광무 1년(1897) 긍월대사(亘月大師)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대지를 크게 3단으로 조성하고 맨 아래에 수월관(水月觀)을 배치하였다.   ○주소 : 경산시 하양읍 환성로 392-30     갓바위 경상북도 경산시 팔공산 남쪽 관봉(冠峰)의 정상에 병풍처럼 둘러 쳐진 암벽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좌불상이다. 관봉을 '갓바위'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것은 이 불상의 머리에 마치 갓을 쓴 듯한 넓적한 돌이 올려져 있어서 유래한 것이다.   ○주소 : 경산시 와촌면 갓바위로81길 176-64     원효암 팔공산 동쪽 기슭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문무왕 8년(668) 元曉大師가 창건했다고 전하나 그 뒤의 자세한 연혁은 알 수 없고, 고종 19년(1882) 亘月大師가 중창하였다. 1980년 대웅전과 산신각을 건립하였으나 1986년 팔공산 화재로 전각과 불상이 모두 소실되었다. 1987년 다시 중창을 시작하여 1990년에 완성하였다. 사찰 뒤에 사시사철 찬물이 나는 샘이 있어 일명 ‘冷泉寺’라고도 하였다. 극락전, 사자루, 산신각이 있으며 삼층석탑과 마애불좌상이 있다.   ○주소 :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 382 (사진출처 : 경산문화관광)  
    • 여행
    2020-09-09
  • [전라북도 완주군] 함께하는 완주, 대표추천 명소 완주9경
    자연이 빚은 아름다운 절경을 만나보고 싶다면 완전한 고을 완주여행으로 가보자. 완주9경의 황홀한 아름다움을 느껴볼 수 있다. 대둔산도립공원 사계절이 모두 아름다운 대둔산은 완주의 자랑이자 보물이다. 곳곳에 드러난 화강암 암반이 기암괴석을 이루고 있고, 빼곡한 숲이 첩첩으로 쌓여 있어 예로부터 호남의 금강산으로 불려온 곳이다. 특히, 정상 부근에 있는 길이 81m, 너비 1m의 금강구름다리는 대둔산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놓쳐서는 안 되는 명소이다. 금강구름다리를 건너면 약수정이 나오고 여기서 삼선줄다리를 타면 왕관바위로 간다. 봉우리마다 한 폭의 산수화로 그 장관을 뽐내는 대둔산은 낙조대와 태고사 그리고 금강폭포, 동심바위, 금강계곡, 삼선약수터, 옥계동 계곡 등 신의 조화로 이룬 만물상을 보는 듯 황홀하기만 하다.   ○주소 : 전라북도 완주군 운주면 대둔산공원길 23 ○문의 : 063-290-2742   고산자연휴양림 숲에서 즐기는 가족휴양지로 사계절 모두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체육시설과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하루 종일 있어도 심심하지 않게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웰빙정자에서 편안하게 한나절 쉬다 갈 수 있고, 캐라반, 휴양관, 숲속의 집에서는 숙박도 가능하다. 여름에는 계곡물을 이용한 물놀이터가 있어 여름을 시원하게 만끽할 수 있다.   ○주소 :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고산휴양림로83-10 ○문의 : 063-290-2732   모악산도립공원 전주시, 김제시, 완주군에 넓게 펼쳐진 산으로 정상 동쪽에 있는 쉰길바위가 아이를 안고 있는 형상이라고 하여 모악산으로 불렸다고 전해진다. 모악산은 금산사를 안고 있으며, 철따라 다양한 변화가 더욱 아름답다. 특히 봄의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며, 마치 어머니의 아늑한 품안과도 같은 정겨운 산이어서 수많은 등산객이 언제나 줄을 잇는다. 모악산에는 대원사와 수왕사 등의 사찰이 위치해 있다.   ○주소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모악산길 91 ○문의 : 063-290-2752   대아수목원&대아호 대아수목원은 숲 속에서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과 함께 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곳으로 150ha가 넘는 넓은 대지에 다양한 식물이 식생하고 있다. 주요 시설물로는 산림문화전시관, 열대식물원, 산림생태체험관이 있고, 금낭화 자생군락지, 풍경이 있는 뜰, 장미원 등의 전문원이 계절마다 형형색색의 모습을 보여준다. 식물을 보며, 천천히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코스도 있어 가족 단위 관람객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다. 한때 동양의 나이아가라폭포로 불리기도 했던 대아호는 고산면 소향리와 동상면 대아리에 위치한다. 대아저수지는 낙조가 특히 아름다우며 호반길을 따라 달리는 드라이브코스는 전국에서 잘 알려져 있다.   ○주소 : 전라북도 완주군 동상면 대아수목원로 94-34 ○문의 : 063-243-1951   송광사&벚꽃길 종남산 아래에 자리한 사찰로, 신라시대에 도의선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봄이면 소양면 소재지에서 송광사에 이르는 1.6㎞의 분홍빛 벚꽃의 터널의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며, 드라이브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사찰 안에는 다수의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어 역사문화 탐방이 가능하며 템플스테이 등의 산사문화도 체험 할 수 있다.   ○주소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송광수만로 255-16 ○문의 : 063-243-8091   삼례문화예술촌 삼례문화예술촌은 만경강 상류에 위치하여 토지가 비옥하고 기후가 온화한 만경평야의 일원을 이루는 지역으로 일제강점기 군산, 익산, 김제와 더불어 양곡수탈의 중심지였다. 양곡수탈 중심에 있었던 삼례양곡창고는 일제강점기 일본인 대지주 시라세이가 1926년 설립한 이엽사농장 창고로 추정되며, 완주지방의 식민 농업 회사인 전북농장, 조선농장, 공축농원과 함께 수탈의 전위대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소 : 전라북도 완주군 삼례읍 81-13 ○문의 : 070-8915-8121   동상운장산계곡 대아저수지를 따라 호반길을 가다보면 신월교에서 시작하는 계곡을 만나게 된다. 이곳이 동상운장산계곡이다. 완주군의 최동단에 위치한 운장산 계곡은 몇해전까지만해도 소양면 위봉산과 진안 운장산 사이에 위치한 우리나라 오지중의 하나였다. 여름이면 운장산계곡 일대가 피서인파로 북새통을 이룬다. 가을이면 주변경관과 어우러져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케 한다.   ○주소 : 전북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 ○문의 : 063-290-2114    위봉사 위봉폭포 위봉산성 추출산위봉사’라고 적힌 일주문과 사천왕문을 지나 위봉사 경내로 들어선다. 깊은 산속의 사찰인데도 마당이 평탄하고 널찍하다. 심산의 품속이어서 그런가. 편안하다. 보광명전 앞에 서 있는 늙은 소나무 한 그루가 고찰의 품격을 말해준다. 비구니들만의 도량인 위봉사는 한눈에 보아도 정숙한 중년 여인의 자태처럼 단아하다. 사찰 내부 건축물의 배치나 공간 구성 어디에도 과장이나 허세가 보이지 않는다. 가히 절제의 미학이다. 팔작지붕으로 유명한 보광명전 지붕의 용마루와 위봉산의 부드럽고 완만한 능선 자락의 조화가 절묘하다. 절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다 극락전 앞 삼층석탑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그 옆에 노랗고 붉은 튤립 몇 송이가 수줍게 피어 있는 곳, 고요와 위무가 있는 사찰이 위봉사다. ○주소 :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위봉길 53 ○문의 : 063-243-7657   화암사 불명산 자락에 있는 화암사는 조선시대에 지어진 사찰로 세월의 흐름을 멋지게 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불명산의 자연에 숨어있듯 묻혀있기 때문에 사찰을 찾아가는 재미도 있다. 시인 안도현은 "나혼자 가끔씩 펼쳐보고 싶은, 작지만 소중한 책 같은 절"이라 하였다. 국보 제316호로 지정된 극락전이 유명하다. ○주소 :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 화암사길 271 ○문의 : 063-261-7576 (사진 출처 : 완도문화관광) 
    • 여행
    2020-07-06

추천관광지 검색결과

  • 경주 불국사, 통일 신라 시대에 지어진 부처님의 나라
      통일 신라 시대에 창건된 불국사는 대한민국 대표 사찰이다. 한국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자랑스러운 한국의 문화유산, 경주 불국사를 만나보자.         불국사가 처음 창건된 것은 신라 법흥왕의 어머니인 영제부인과 기윤부인의 불심이었으나, 소규모의 절이었던 불국사를 지금의 대찰로 만든 것은 경덕왕의 재상이었던 김대성이다. 어린 나이에 사망했지만 전생의 정보를 가지고 다시 태어난 김대성은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는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님을 위해서는 석굴암을 지었다고 한다. 이후, 임진왜란을 거치며 대부분의 건물이 불타버린 불국사는 여러 차례의 중창 및 중수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불국사는 신라인이 그리던 이상적인 세계를 옮겨놓은 곳이다. 석단을 기준으로 위는 부처님의 나라, 아래는 아직 범부에 이르지 못한 세계를 나타내는 불국사는 굳세고 단단한 돌 구조물을 통해 불국 세계의 굳셈을 보여주고 있다. 자하문으로 오르는 청운교와 백운교를 통해 부처님 나라에 들어서면 대웅전이 나온다.         불국사는 크게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신 탑이 있는 대웅전 영역과 부처님의 불상을 모신 불전으로 나눌 수 있다. 자하문을 통해 대웅전에 들어서면 불국사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미지인 다보탑과 석가탑이 모습을 드러낸다.       불교 서적 「법화경」에 근거하여 세워진 두 탑은 다보여래와 석가모니불이 불국사에 상주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같은 3층 석탑이지만 양식에서 극단을 보여주는 두 탑은 한국 석조 예술의 절정을 보여준다. 현세의 석가모니불을 상징하는 석가탑은 간결하고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으며, 석가모니의 설법을 상징하는 다보탑은 다양한 모양의 돌을 통해 화려한 외양을 자랑한다. 석가탑 내에서 발견된 유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1967년 국보로 지정된 뒤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대웅전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극락전은 연화교와 칠보교를 통해 들어갈 수 있다. 극락전 마당의 금빛 복돼지상은 극락전 현판 뒤에서 발견된 돼지 조각을 상징하는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복돼지상에 복을 빌곤 한다. 이 외에도 극락전에는 통일 신라 3대 금동불상으로 손꼽히는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이 있으니 다른 불상들과 비교하며 같이 구경해 보자.         신라 사람들은 꿈꾸던 부처님의 이상적인 세계가 바로 신라라고 여겼다 한다. 학창 시절에 수학여행 단골 코스였던 경주 불국사의 이모저모를 그 의미와 함께 생각해 보며 더 깊게 이해한다면 우리도 부처님의 이상적인 세계에 한 발짝 더 다가가 볼 수 있지 않을까.               〇 위치 :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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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
    2022-12-25
  • 안동지역 불교문화의 대표, 봉정사
    봉정사는 한국 목조문화의 박물관이며 불교문화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목조문화의 박물관으로는 극락전, 대웅전, 화엄강당과 고금당 등에서 건축사적 맥락을 이해할 수 있으며 불교문화사적 의미로는 화엄사상의 종찰이며 다양한 탱화와 영정, 그리고 묵서 등 안동지역과 불교문화 대표하는 유물이 소장된 사찰이다.     봉정사가 언제 창건되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의 창건이라는 기록과 의상대사의 10대제자의 한사람인 능인선사의 창건이라는 기록이 있으나 대체로 능인선사가 672년에 창건하였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창건 연기설화에 의하면 부석사에서 의상대사가 종이로 만든 봉황을 날렸는데 이 봉황이 앉은 곳이 바로 이곳 봉정사이며 그래서 이름을 봉이 정지한 곳이라는 뜻에서 봉정사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봉정사가 창건 이후 역사는 아쉽게도 기록이 많지 않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일제강점기 6.25전쟁을 겪으면서 사찰에 소장된 자료가 모두 불탔다고 한다. 현재 확인된 자료로는 극락전 보수공사는 1363년에 보수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또한 현재 봉정사 대웅전 역시 조선 초기 이전으로 건축연대를 올려 잡는 견해가 있어 고려말기 봉정사는 국가적인 관심이 있었던 사찰임이 분명하다. 이후 1625년 1809년과 1863년에 보수가 있었다. 1882년에 현판을 새롭게 하였으며 1972년에 극락전을 보수하였다.
    • 추천관광지
    2021-11-23
  • 고려시대 목조건축물을 볼 수 있는 곳, 거조사
      은해사에서 나와 신녕면 쪽으로 8km 정도 가다보면 거조암을 만날 수 있다. 원효대사가 거조암을 창건한 뒤 진평왕 13년에 혜림법사와 법화화상이 영산전을 건립하여 오백나한을 모시게 되면서 영험한 나한 기도도량으로 유명해졌다. 우리나라 목조건축물은 고려시대 이전의 것은 없으며 남아있는 고려시대의 목조건축물로 봉정사 극락전, 강릉 객사문, 부석사 무량수전, 예산수덕사 대웅전, 부석사 조사당 그리고 이 곳 거조암 영산전 6곳뿐이라는 점에서 중요하게 평가 받고 있다.
    • 추천관광지
    2021-09-16
  • 천년의 고찰, 만수산 무량사
    천년고찰 무량사는 시간도 지혜도 세지 않는 무량의 도를 닦는 곳으로 창건에 대한 내용은 신라 말에 범일국사(梵日國師, 810~889)가 세워 여러 차례 공사를 거쳤다고 전해지나 자세한 연대는 미상이다. 다만 신라 말 고승 무염국사(無染大師, 801~888)가 일시 머물렀고, 고려시대에 크게 다시 지어졌다. 무량사는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살해한 뒤 임금이 된 것을 비판하며 평생을 은둔한 천재시인 매월당 김시습이 말년을 머물다가 세상을 떠난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때 조선시대 명승 진묵대사(震默大師, 1563~1633)도 거처했었다. 임진왜란 때 무량사의 모든 건물이 불에 탔으며 극락전은 그 후 다시 세웠다. 또한 왜란 이전에는 영산전(도문화재자료 제413호)과 명부전(도문화재자료 제389호) 등의 전각 명칭은 보이지 않고 극락전(보물 제356호)을 위주로 한 기록만 보일 뿐이며, 당간지주(도문화재 제57호) 및 석등(보물 제233호)과 무량사 오층석탑(보물 제185호) 역시 고려초기의 양식을 지녀 고려시대 사찰이라 여겨진다. 그 외에도 김시습영정(보물 제1497호), 무량사미륵불괘불탱(보물 제1265호) 등 많은 유물이 있다. 극락전은 외관은 2층 구조이나 내부는 위 아래가 트여 있는 이른바 통층구조의 특징을 보인다.
    • 추천관광지
    2021-01-19
  • 단일 사찰로는 가장 많은 문화재를 보유한, 남원 실상사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길 지리산 천황봉(天皇峯)에 있는 실상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소속의 사찰로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중국 당나라에 유학하여 서당지장(西堂知藏) 선사로부터 6조 혜능의 남종선을 배우고 돌아온 홍척국사가 흥덕왕과 선강태자의 귀의를 받아 현재의 지리산인 남악(南岳)에 실상사를 창건하게 되었다.창건 당시 실상사는 지실사(知實寺)로 불리었으며, 이후 홍척국사의 법을 이어 받은 수철화상이 실상산문 제2대 조사가 되었다. 수철화상은 왕실 사람들의 귀의를 받아 실상사를 크게 확장하였다.     조계종 실상산파로 종명을 개칭한 고려시대는 실상사의 최대 융성기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1127년-1130년 사이에 대대적으로 중창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최근 실시한 발굴 조사에서도 창건 이후 약 300년이 지나 대대적으로 중창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숭유억불 정책을 펼친 조선은 세종 재위 시에 불교계의 종파를 선교 양종으로 묶고 전국에 36개 사찰만을 남겨 놓았다. 당시 실상사는 본래 실상사의 말사였던 산내면 원천리 소재 원수사(源水寺)의 관할에 속하게 되었다. 고려 말 이후 잦은 병화로 쇠퇴해지기 시작한 실상사는 15세기 중반에 이르러 완전히 폐사되었다.이후 200년간 절의 경역은 민간 경작지로 사용되어 왔다. 철불과 석탑만이 논바닥에 방치되어 오다가 1690년(숙종 16) 침허조사에 의해 대적광전을 비롯하여 36동의 건물을 중창하게 되었다.그러나 침허조사가 중창한 대가람은 1883년과 1884년의 화재 사고로 약사전, 명부전, 극락전 등 3채의 불전과 승당 1채만 남겨두고 모두 전소되었다. 1884년 월송대사가 대적광전이 불탄 자리에 지금의 보광전 건물을 새로 중창하였다.     위치: 전북 남원시 산내면 입석길 94-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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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30
  • 통일신라의 석탑 제천 신륵사 삼층석탑
    신륵사에 세워져 있는 탑으로,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입니다. 기단은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하나씩 본떠 새겼고, 탑신에서도 역시 몸돌의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습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수가 층마다 4단이며, 빗물을 받는 낙수면은 경사를 약하게 두었고, 네 귀퉁이에서 약간씩 치켜 올려진 상태로,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으로 노반, 복발, 앙화, 보륜, 보개(지붕 모양의 장식) 등이 올려져 있으며, 머리 장식부의 무게중심을 지탱하기 위한 쇠꼬챙이(찰주)가 뾰족하게 꽂혀 있습니다.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을 잘 계승하고 있는 고려 전기의 탑으로, 특히 이처럼 머리 장식이 잘 남아있는 예는 드문 편이며, 각 부재를 만든 솜씨도 세련되움이 배가되어 있습니다. 1981년 탑을 해체하여 복원할 때 기단 내부에서 흙으로 빚은 소형 탑 108개와 사리함 조각이 발견되었으며 현재 국립청주박물관에 보관, 전시되고 있습니다.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4년(582)에 창건하고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중수하고 조선 시대 무학대사와 사명선사가 중창하였다고 전하며, 현재 경내에는 삼층석탑 및 극락전(지방유형문화재 제132호)과 괘불대, 산신각, 국사당, 요사채 등의 건물이 있습니다.   제천시 덕산면 월악산로4길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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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8-06
  • 충북 유형화문재 제130호 마애여래입상이 있는 미타사
    미타사는 조계종 사찰로 동양최대 높이 41m의 지장보살상이 있으며, 충북 유형화문재 제130호 마애여래입상이 있다. 고려후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마애여래입상은 미타사를 향하여 산을 오르다보면 지장보살성지를 지나 미타사에 다다르기 전 서쪽에 있는 바위 벽에 동쪽을 향하여 조각되어 있다. 이 마애불은 거대한 바위의 평평한 면에 마애불 주변을 깎아 냄으로써 입상을 부조하였다.     미타사는 한국불교 조계종 법주사의 말사로 신라 진덕여왕 8년인 630년 창건되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중창 조선인조 호란 당시에는 의병 3천명을 모집했던 호국도량으로 중수되기도 하나 1723년 영조시대에 화재로 전소되어 터만 남아있다 1965년 명안스님의 중창불사가 이루어지며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 주요 전각으로 극락전, 삼성각, 약사전, 요사채, 3층 석탑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3층 석탑에는 대광명세존진신 사리가 보전되어 있어 불교에서는 큰 의미가 있다.   음성군 소이면 소이로 61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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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7-21
  • 고즈넉한 느낌을 원한다면 여기로, 봉림사
    신라 진덕여왕 때 고구려에 맞서기 위해 창건한 호국사찰이다. 극락전의 목조아미타여래좌상(보물 제980호)의 복장에서 700여년 전 고려시대 경전과 사리가 발굴되었다. 간소함 속에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사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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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25
  • 봉황이 깃든 천년 고찰 대원사
    대원사는 천봉산 봉우리를 약간 오른쪽으로 둔 정남향을 하고 있는 사찰로서 6·25동란 이전까지만 해도 10여동의 건물들이 유전되고 있었으나 여순사건때 모두 불타버리고 거의 폐허가된 상태였다. 그러나 다행이도 당시 극락전 건물만 남아있게 되었다.사찰의 연혁을 보면 오랜 전통을 갖고있어 조선사찰사료에 의하면 초창(初創)은 신라지증왕시 아도화상(阿道和尙)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그 후로 고려시대에 와서는 조계 제오세 원오국사(圓悟國師)가 중건하였고 조선조로 넘어와서는 영조 43년에 중건하였다고 기록되고 있다.   건물의 규모를 보면 정면 3간, 측면 2간의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 형식의 건물로 기단(基壇)은 전면에 1m이상의 잡석축대(雜石築臺)를 쌓고 양면 및 배면은 얕은데 전면중앙에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초석은 자연석으로 덤벙 주초방식이며 기둥은 약간 배흘림이 있고 우주에는 미세한 귀솟음이 보인다.공포의 형식은 형방위호부터 짜여진 다포형식으로 전후 각주간에는 공간포를 각각 2구씩 배열하였으며출목(出目)은 외삼출목(外三出目), 외사출목(외사출목)으로 외칠포작(外七包作), 외구포작(外九包作) 형식이다.외부쇠서는 삼앙일수설(三仰一垂舌)로서 앙설밑에는 연봉을 조출시켰다.     가구(架構)를 보면 대량(大梁)이 내고주(內高柱)에 끼워져 상부가구재 (上部架構材)를 받고 있으며 종량(宗梁은 대량(大梁)위에 놓여진 동자주(童子柱)가 받게 하였다.천정은 하중도리(下中道里) 위로부터 우물천정으로 처리하였다.처마는 겹처마이고 단천은 내외부 금모노단청(錦毛老丹靑)을 하였다.불단위로는 중앙에 아미타불이 본존불로 모셔져 있는데 좌우보처(左右補處)로 두 협시불(脇侍佛)이 있어야 하나 한불은 6·25후 분실하였다 하며 한불의 협시불만 우측에 남아있다.     주소 : 보성군 문덕면 죽산길 5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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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6-23
  • ‘한번 돌리는 것만으로도 공덕을 쌓는다’는 예천의 윤장대 국보된다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각각의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경상북도 예천군의 보물 제145호 ‘예천 용문사 대장전(醴泉 龍門寺 大藏殿)과 보물 제684호 윤장대(輪藏臺)’를 통합해 한 건의 국가지정문화재 국보로 승격 예고하였다.   문화재위원회(건축‧동산분과)는 용문사 대장전(건축물)과 윤장대(동산)의 건립시기, 의미, 특징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볼 때 두 보물이 각각이 아닌 일체성을 갖는 문화재이고,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뛰어나 한 건의 통합한 국보로 승격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하였다.   예천 용문사는 신라 경문왕대 두운선사(杜雲禪師)가 당나라에서 돌아와 초암을 짓고 정진한데서부터 비롯되었으며, 후삼국 쟁탈기에 왕건과 관계를 맺으며 사찰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대장전과 윤장대는 고려 명종 3년(1173년) 국난(김보당의 난) 극복을 위해 조응대선사(祖膺大禪師)가 발원하고 조성한 것으로, 고대 건축물로는 매우 드물게 발원자와 건립시기, 건립목적이 분명하게(重修龍門寺記/1185년) 드러나 있다. 대장전과 윤장대는 초창 이래 여러 차례 수리된 것으로 확인되는데, 최근 동(오른쪽) 윤장대에서 확인된 천계오년(天啓 午年, 1625) 묵서명과 건축의 양식으로 미뤄볼 때 17세기에 수리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대장전은 일반적으로 불교경전을 보관하는 건물인데, 용문사 대장전은 윤장대를 보호하기 위해 특별히 건립된 건물이라는 특징을 지녔다. 용문사 대장전은 다포계 맞배(책을 엎어놓은 모습)지붕 건물로 초창(1173년) 이후 8차례 이상의 중수가 있었으나 초창당시의 규모와 구조는 유지되고 있다.   중수과정을 거치면서 건축 양식적으로 현재는 17세기말 모습을 하고 있으나 대들보와 종보의 항아리형 단면, 꽃병이나 절구형태의 동자주(짧은 기둥)에서 여말선초의 고식(古式)수법이 확인된다.   무엇보다 대장전은 윤장대를 보관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경장건축(경전(經典)을 보관하는 건축물)이라는 데서 독특한 가치가 있다.   윤장대는 불교 경전을 보관하는 회전식 경장(經藏)으로 전륜장, 전륜경장, 전륜대장이라고도 한다. 예로부터 윤장대를 한번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는 것과 같다는 공덕신앙이 더해져 불경을 가까이 할 시간이 없는 대중들에게 각광을 받았다.   윤장대는 고려 초 중국 송대(宋代)의 전륜장 형식을 받아 들여 제작한 것으로 생각되며, 영동 영국사와 금강산 장안사 등에도 윤장대 설치 흔적과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현재는 예천 용문사 윤장대만이 유일하게 같은 자리에서 846년 동안 그 형태와 기능을 이어오며 불교 경장신앙을 대변하고 있다. 대장전 내부 양쪽 옆면 칸에 좌우 대칭적으로 1좌씩 설치되어 있으며, 8각형의 불전 형태로 제작되어 중앙의 목재기둥이 회전축 역할을 하여 돌릴 수 있다. 8각 면의 창호 안쪽에 경전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특히, 윤장대 동쪽은 교살창, 서쪽은 꽃살창으로 간결함과 화려함을 서로 대비시킨 점, 음양오행과 천원지방의 동양적 사상을 의도적으로 내재시켜 조형화(① 회전축에 원기둥과 각기둥 사용, ② 머름청판 풍혈을 양각과 음각으로 조각, ③ 凹·凸과 음·양 수로 구성된 회전축 밑단의 초석부재 등) 시켰다는 점에서 뛰어난 독창성과 예술성이 인정된다. 또한, 그 세부 수법 등에서 건축‧조각‧공예‧회화 등 당시의 기술과 예술적 역량이 결집된 종합예술품이라는 점에서도 가치가 크다.   이처럼 예천 용문사 대장전과 윤장대는 고려 시대에 건립되어 여러 국난을 겪으면서도 초창 당시 불교 경장 건축의 특성과 시기적 변천 특징이 기록 요소와 함께 잘 남아있다. 윤장대는 불교 경전신앙의 한 파생 형태로 동아시아에서도 그 사례가 흔치않고 국내 유일이라는 절대적 희소성과 상징성에서도 국보로 승격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현재까지 우리나라는 총 24건의 국보 건축물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번에 예천 용문사의 대장전이 국보가 되면 2011년 ‘완주 화암사 극락전’ 이후 8년 만에 다시 국보 건축물이 탄생한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국보로 지정 예고한 예천 용문사 대장전과 윤장대에 대하여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수렴된 의견을 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 국보로 지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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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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